2024. 11. 25. 21:28ㆍ독후감, 책소개
저자 니콜라스 윌터스토프는 25세의 아들 에릭을 사고로 잃었다. 산을 좋아하던 에릭은 산을 혼자 오르다가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그리고 그 한 번의 실족이 가족들과 다시는 함께할 수 없게 만들었다. 다시는 에릭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으며. 다시는 에릭과 함께 식사할 수 없으며. 두 번 다시 함께 여행할 수 없다.
니콜라스는 이야기 한다. “에릭의 부재는 우리의 존재만큼 실재적이며, 그의 침묵은 우리의 연설만큼 큰 외침이다.” 그는 차츰 에릭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나 여전히 그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녀를 먼저 떠나보내는 부모의 마음은 어떠할까.
나는 에릭에게서 많은 동질감을 느꼈다. 그는 지금 나의 나이 25세에 죽었다.그는 음악과 예술을 사랑했고 세상을 즐길 여유마저 없는 것처럼 보일만큼 주어진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자연에서 홀로 생각하기를 사랑했다. 이런 에릭의 취향과 성격들이 나와 비슷했다. 더욱 내 삶에 비추어 생각하게 만들어주었다. 25세 신주현. 너무나 당연하게 평온한 죽음을 그린다. 나이 들어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당부의 한마디를 남기며 죽을 것. “하나님을 끝까지 사랑하렴” 정도의 말을 남길까? 에릭은 자신의 어떤 죽음을 상상했을까? 25세가 되기까지 죽음을 상상한 적은 있을까?
꽃은 시들어도 그 ‘향기’는 우리 곁에 남는다. 에릭은 떠났지만 에릭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부정적으로 얘기해보자면 상처는 아물어 아프지 않게 되더라도 흉터는 남는다. 그 흉터를 볼 때 아픔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된다. 그러나 그 아픔을 상기함은 무익한 일을 아닐지 모른다. 저자는 이 도무지 아물지 않을 것 같은 상처를 어떻게 대하는가.
그는 신앙인이었으나 이렇게 이야기한다. “복음은 다른 중요한 역할들은 해 주었지만 에릭을 잃은 내게 위로를 주지는 못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슬픔을 억제시키는가? 이 세상의 슬픔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대로 틀어 막혀야하는가? 세상의 슬픔과 하나님나라의 기대는 별개인 것 같다.
우리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나에게는 할머니요. 아버지와 큰아버지에게는 어머니다. 큰아버지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장례를 치룬 후에 묘소 앞에 가족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여느 때와 같이 예배를 시작했다. 그리운 어머니 이야기, 그리운 할머니 이야기가 오갔다.
그러던 중 큰아버지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우리 집안의 큰 어른인 큰아버지가 소녀와 같이 울었다. 도무지 참아지지 않는 울음이었다. 정말로 가녀리고 어린 소녀의 울음이 큰아버지에게서 터져나왔다. 나는 느꼈다. ‘슬퍼하지 말자고는 하지 말자’ 충분히 슬퍼하고 그리고 나서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자. 이 세상에서의 이별도 분명 너무 슬픈 일이다. 연인과 헤어짐은 왜 우리에게 슬픔이 되는가. 특별했던 우리 사이가 변하여 남이 된다.
매주 보던 그 얼굴을 이제 보지 못하게 된다. 다음 만남까지의 잠깐의 이별도 견디기 힘든 관계가 있는데 이 세상에서의 이별은 분명 슬픈 일이 맞다.
그러나 애통하는 자는 새 날을 꿈꾼다. 복음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던 니콜라스는 그럼 하나님을 원망하는가? 그렇지 않았다. 아들을 잃은 다른 이가 니콜라스에게 시편 18편을 들어 말했다. “내 걸음을 넓게 하셨고 나로 실족하지 않게 하셨나이다” “내 아들은 실족하지 않았고 하나님이 그를 부르시려 산을 흔드셨어”
니콜라스는 그에게 답한다.
“내 아들의 죽음이 내게 주는 고통은
내 아들의 죽음이 그분에게 주는 고통인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성품을 온전히 이해한다. 하나님을 죽음의 사자로 보는 견해는 하나님과 우리 자신과 죽음을 합리적인 도식에 짜 맞추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제시하는 틀에 맞춰지는 분이 아니며 흘러넘치시는 분이시다. 사랑하지 않는 다면 고통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존재하는 현실에 있어서 소중히 여김과 사랑은 고통을 수반한다.
우리 세상에서의 사랑은 고통을 수반하는 사랑이다. 많이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많이 고통 받지 않는다. 왜냐면 우리의 고통은 사랑함에서 오기 때문이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우리에게 주신 이 명령은 우리로 하여금 곧 고통 가운데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초대인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고통 받으시는 이유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애통을 명령하신다. 그리고 애통하는 자에게 복을 주사 위로함을 주신다.
나는 나이에 비해 제법 많은 애통을 겪어왔다. 폭력적인 병들이 내게 찾아왔다. 그리고 나는 애통 속에서 애통을 직접 통과하며 긍휼의 마음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주변에 아픈 이들을 알게 되면 치유를 위하여 기도한다.또 엠뷸런스와 소방차가 지나갈 때면 잠시 기도한다. “하나님 누구에게 어떤 일이 있는지 모르나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이제는 내 연약함이 쓰임받는다. 연약한 오른 팔로 기타를 치며 찬양하고 공황 증상이 있는 친구들은 내게 대처법을 묻는다. 류마티스로 관절의 어려움이 있는 이들에게 비가 오는 날이면 안부를 전한다. 니콜라스는 에릭의 죽음을 의미 없이 남겨두지 않았다. 죽음을 기억하고 사랑하고 애통하며 연대했다.
나는 앞으로 수많은 탄생과 수많은 죽음의 현장에 함께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곳 가운데 분명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책을 통해 얻어간다. 그는 눈물을 눈물로 끝내지 않으시며 이를 통해 열매 맺게 하신다.
모든 죽음과 그로인한 고통 속에 있는 이들에게 평강이 가득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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